영화

영화 "럭키" : "행운의 키"에 대한 사색

nofence 2016. 11. 27. 18:51


영화 제목이 "행운의" 혹은 "행운이 있는" 이라는 뜻의 형용사 Lucky 가 아니라 Luck-key라는 걸 뒤늦게 영화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목욕탕에서의 락커룸 "키"가 유해진과 이준의 운명을 뒤바꿔 놓았으니 영화 제목은 "행운의 키"라고 명명되어도 내용과 일맥상통하며, Lucky라는 형용사의 발음과 동일해지니, 운율상으로도 자연스레 매칭이 되어 버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갖게 되는 셈이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 유해진의 락커룸 키를 이준이 획득하게 되어 일순간이나마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어 버렸으니 그 "키"는 이준에게 있어 "행운의 키"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유해진에게 있어서도 그 키와 연루 되어 잠시나마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고, 끝내 사랑과 영화 배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게 되었으니 그 키 역시 유해진에게 있어서도 "행운의 키"임이 분명한 셈이다.


"행운의 키"를 이준이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운은 결국 유해진과 이준에게 고스란히 찾아 갔고, "행운의 키"는 일순간의 행운이 아닌 삶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 근본적인 "키"로서 온전히 작용할 수 있었다.


킬러임에도 불구하고 살생을 저지르지 않고, 클라이언트와 타겟을 모두 만족시킬수 있는 "윈-윈 전략"이 유해진을 통해 구사 되는 발상이 참신했었고, 유해진과 이준에게 나타나는 애틋한 사랑이 쏠쏠한 재미를 주기도 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내 "행운의 키"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영화 속에서는 "행운의 키"라는 존재가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행운의 키"를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할 수 없다. "행운의 키"는 어쩌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 할 무형의 대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키는 우리가 소망하고 염원하는 "희망"일 수도 있고 그 희망을 생동시키는 강력한 동기가 뒷받침 되었을 때 비로소 희망이 "행운의 키"로 온전히 제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지금은 소천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이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갑자기 떠오른다. "희망은 힘이 세다".